유화부인..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배게 하고 집에서도 쫓겨나게 만든 사내,
그래서 한 때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 싶게 만든 원수같은 사내였지만
나는 결코 그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비록 두 번 다시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첫사랑의 추억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는 나의 자랑스러운 외아들 추모대왕의 아비가 아닌가 말이다.
소서노..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욱 애가 타서 기를 쓰고 졸라댔지.
나중에는 나라를 세울 때에 재산을 기울여 조력했던 일까지 상기시키며 성화를 부리니 대왕은 아픈
옛 상처를 건드리기나 한 듯 불같이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이었어.
사랑에 속아 몸도 주고 돈도 주고 결국에는 배신당한 연상의 여인 나 소서노, 비극적 운명의
여인 나 소서노의 그지없이 뼈져리고 살 떨리는 절망감을 그 누가 알아주랴!
허황옥..나는 김수로대왕과의 사이에서 열 명의 왕자와 두 명의 공주를 낳았지.
첫 왕자는 수로대왕을 이어 가락국의 제 2대 임금이 된 거등이고,
또 한 왕자는 지방군인 거칠군이 되었어.
나는 열 명의 아들 중 둘에게 나의 성인 허씨를 주었다.
그렇게하여 오늘날 너희 김해 허씨가 비롯되었느니라.
도미의 아내..그런데 한 마디만 덧붙이고 싶네요.
죄다 그렇지는 않지만 요즈음 여인들은 정조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지요?
또 걸핏하면 이혼도 잘해서 가정법원이 '이혼공장'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면서요?
여인 여러분, 그래도 정조를 소중히 여기셔야만 해요.
스스로 하찮게 여기는 정조를 남정네들이라고 해서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 주겠느냐구요?
우황후..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을꼬?
방법은 권세를 잡는 길뿐이라고 나는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
그리고 마침내 그 기회가 왔으니 그것은 대왕이 재위19년 만에 붕어한 사건이었어.
그렇게 해서 첫 머리에 말한 것 처럼 내 손으로 시동생 연우를 다음 대왕으로 선택하고 그와 재혼하
여 여전히 황후의 권세와 연화를 누리게 되었던 것이야.
이 대목에서 한 번 더 웃어야지. 오호호호홋!
한 주..며칠 동안을 방안에 숨겨두고 음식을 몰래 가져다 주고 지내는 동안 우리의 정분은 갈수록 깊어져 잠
시도 떨어져서는 못 견딜 정도가 되었지 뭐예요.
아이, 이런 말씀도 해야 하나요.
그리하여 남녀 간의 연애가 요새보다는 훨씬 자유롭던 시대였으므로 우리 두 사람은 부모에게 알릴
새도 없이 그만 장래를 약속하고 몸과 마음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어버렸답니다.
부끄러워 어쩌면 좋아!
미실궁주..나는 신라가 진정한 신국으로 도약하던 진흥대제 중기부터 진평대제 초기까지 약 40년 동안 오로
지 비상하게 빼어난 미색 하나로 제왕과 황후를 능가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신라 정계
를 좌지우지 했으니, 오랜 세월이 흐른 이제 와서 되새겨보아도 나 미실은 일개 궁주에 불과했지
만 그 어떤 여왕의 권세도 부럽지 않았어.
평강공주..이때 범처럼 날쌘 용사가 있어서 스스로 선봉이 되어 적진을 죙횡무진으로 누비며 용감하게 오
랑캐들을 무찌르니 싸움이 끝난 뒤에 논공행상을 하는데 그 용사의 전공이 단연 으뜸이었어.
태왕이 불러보니 이번에도 또 온달이 아닌가!
태왕이 그제서야 무릎을 철썩치며 이렇게 소리쳤다고 하네!
"바보, 아니 온달아!
과연 너는 내 사위로다! 내 이자리에서 너를 고구려의 대형으로 삼겠노라!"
선덕여왕..이런 고얀 놈!
내가 비록 정치를 잘 했느니 못 했느니 하는 소리가 있는 건 안다만은 오로지 여자라는 이유로 저
따위 경박스롭고 악의에 가득 찬 망발은 차마 들어줄 수가 없구나!
그럼, 김부식의 탄식처럼 우리 신라는 어찌하여 나 선덕여왕을 임금으로 내세움으로써 '암탉이 울
고 암퇘지가 껑충거리게 하는'어리석음을 자초하였을까?
천추태후..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모두가 섭정으로서 12년 동안 정권을 마음대로 휘두르던 나 천추태후 때
문이었지만 내 아들 목종은 단 한마디도 이 어미를 원망하지 않더구나.
그저 이 모두가 자신이 부덕한 탓으로 돌리고, 내가 음식을 먹는 것과 말 타는 것까지 일일이 도와
주니 내 눈에선 눈물이 비 오듯 했지 뭐야!
아아. 비통할 사!
그때 내가 무슨 말로 이 효성 지극한 아들, 하지만 내가 12년 동안이나 허수아비 노릇을 시킨 끝에
망쳐버린 불쌍한 아들을 위로할 수 있었겠는가.
문정왕후..그랬어. 우리 조선은 '백성을 위한, 백성에 의한, 백성의 나라'가 아니라 오로지 양반을 위한, 양반
에 의한, 양반의 나라. 그것도 양반의 적자를 위한 나라였다네.
그런 까닭에 양반의 적자가 아닌 서얼과 천민의 남자와 여자, 특히 여자는 사람대접도 해주지 않
았으니 이들의 한이 얼마나 컸겠는가.
황진이..아아, 내 일생을 돌이켜볼수록 비감스럽구나!
천부적 미모와 재주를 타고 났건만 남녀차별과 신분차별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해 명월이라는 기생으
로 일생을 보내야 했던 불행한 여인이 나 황진이였다네!
그 어떤 남성 시인에 못지않게 뺴어난 사재를 지녔건만 여자로 태어나 과거를 보고 벼슬길에 나아갈
수도 없었고, 신분이 천한 여자의 사생아로 태어났으니 정상적인 혼인으로 평온한 가정생활을 꾸려
갈 수도 없었지..
자칭 타칭..'여왕'이라 불리울 만한 여인들의 이야기가 일인칭 관점에서 서술되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책에서나 현실에서나 여자의 적은 여자이고.
실력이나 기본적인 소양보다는 태어나길 이......쁘게 난 것이 늘 문제의 중심이요 결말이 되나니..
그 점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왜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가게끔 썼는지가 궁금한 책이었다.
오히려 역사적 사건을 중요치 않은 것으로 묻어버리기에 제격이구만..
여자라서 남달리 느겨지는 것도,
여자라서 특별히 공감가는 것도,
없는
걍..그런 책이다..
나를여왕이라부르라..황원갑..도서출판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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