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말보다는 신중을 기하는 작업일 것이다.
다시 쓸 수 있고, 돌려 쓸 수 있고, 착하게 쓸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남의 가슴을 요동치게끔 하는 글이나, 굳은 결의가 보이는 글들은..
글쓴이의 고뇌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나..
다시 쓸 수 도 있고, 보기 좋게 쓸 수도 있는 것을 그리 옮겼을 땐 그만큼의 연유가 분명 있을 터이니..
그리고..
친구를 좋아한다..는 것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원하는 것을 알아서 행동해 주는..
옆에 있는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는...
그의 글이 좋아 친구가 되고 싶은..
갑진년도 저물어 한 해를 마치는 섣달그믐 나 이옥은 시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옛사람의 의로운 일을 삼가 본받아 글의 신의 영전에 고합니다. 글의 신이여! 내 그대를 저버린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젖니를 갈기 전부터 글을 썼으니 그대와 벗한 지도 어느덧 이십이년이 되었습니다. 내 천성이 게으른 탓에 '서경'은 겨우 사백번 읽었고 '시경'은 일백번 읽었습니다. '주역'은 삼십번을, '사서'는 오십번을 읽었습니다. 내 성품이 '이소'를 가장 사랑했지만 일천 번을 채우진 못했습니다...
그러니 입에서 내뱉는 말은 거칠고, 가슴에서 뽑아내는 생각은 졸렬하여 문인의 반열에 들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오늘날 세상을 내 일찍이 깊숙이 들여다 본 적이 있습니다. 박학으로 이름을 날리는 자를 만나 질문을 해보면 독 속에 들어앉아 별을 세는 꼴이고, 글 잘 짓는다고 소문난 자의 글을 읽어 보면 남의 글을 흉내내고 훔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시문과 과거 문장을 잘 쓴다고 해서 읽어 보면 허수아비가 시장에서 춤추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도시에서 명성을 날리고 활개를 치고 다닙니다. 살아서는 과거 시험과 관직에서 명성을 얻고, 죽어서는 글이 목판에 새겨지는 영예를 누립니다. 낮은 것도 그들이 쓰자 높아지고, 자잘한 것도 그들이 쓰자 크게 됩니다. 모두들 제 글의 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유독 나만이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경전이 술이라도 되는 양 탐닉하고, 서책이 여자라도 되는 양 푹 빠져 보기도 합니다. 눈과 귀가 놓친 것이 있을까 싶어 손으로 베껴 써 보아도 그 누구의 칭찬도 듣지 못합니다...
바라건데, 그대 글의 신은 나를 비루한 놈이라 여기지 말고 바보같은 성품의 나를 한번 더 도와서 예전의 습성을 씻어 버리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내 비록 어리석기는 하나 새해부터는 조심해서 그대를 져버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 감회가 절로 일어 붓꽃을 안주 삼아 들고 벼루 샘물을 술 삼아 길어 올립니다. 마음의 향기 한 글자가 실낱같이 가늘고 희게 타오릅니다. 글을 잡고 글의 신에게 고합니다. 신령은 와서 흠향하소서!
p187 이 옥의 글..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멋지지 않았다면 와 보지도 않았을게야."
조선의 천재 문인이라는 이 옥과 김 려의 이야기였다..
다 옮기기 힘든 사랑스런 글들이 많이 펼쳐져 있는..
멋지기때문에놀러왔지..설흔..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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