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제목을 써 놓으니 왠지 어려운 사전 같겠으나..
박광수의 만화책이다..
촌철살인의 폐부를 찌르는 명확한 설명을 해놓은..
혼자 보기 아까워 하나씩만 소개한다..
1.거짓말쟁이..입이 돌아가는 대로 랜덤으로 말하는 구라계의 저널리스트.거짓은 또다른 거짓을 낳기에 기억력이 비상하지 않는 한 결국 자신이 뱉은 말로 자기 손발을 묶는 불행한 사람.
2.내일..젊은이에게는 너무 멀고 노인에게는 너무 가까운,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동의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 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김없이 다가오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미지의 시간.
3.달력..1년이 단지 365일로만 한정되어 있다고 믿는 비관주의자들이 벽에 걸고 보는 종이시계. 반면에 낙관주의자들은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 있는 희망을 본다. 학생들이나 직장인들로 하여금 '빨간날'만 목빠지게 찾게 한다는 점에서 색맹을 촉발할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함.
4.리더십..한 집단의 우두머리가 반드시 지녀야 할 미덕에 대해, 이론가들이 책에 저마다 다르게 규정하고 있는 잡소리
5.명품..품질은 짝뚱이라 불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가격만큼은 현격한 차이를 나타내는 옷이나 가방, 시계따위를 말함. 간혹 큰돈을 지불하고 명품을 소유하면 그 물건을 소유한 자신을 명품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환각제의 일종.
6.배려..누구나 충분히 갖고 있다고 스스로 믿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가장 인색해지는 것. 그래서 어떤 이들은 진정한 배려란 용기와 동의어라고 말한다.
7.술집..인생이라는 에베레스트산을 오를때, 단번에 오를 수 없음을 안 선각자들이 요소요소에 설치해 놓은 베이스캠프.
8.예술..8등신 여성의 S라인 몸매, 울 엄니의 된장찌개, 비오는 날 파전에 막걸리 한 잔, 가수 비의 초콜릿 복근 등 나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세상의 많은 것들.
9.짝퉁..본질의 천박함을 외형의 화려함으로 감추고 있는 구라계의 대표선수. 이들 중에도 등급이 있어 '진짜 같은 가짜'는 A급,SA급,CUSTOM급으로 분류된다.
10.책..글자를 깨알같이 수놓은 수면제. 그밖에도 베개, 라면냄비 받침대, 화가 날 때 돌멩이나 야구공 대신, 처음 만난 여인에게는 유식함을 나타내는 액서세리로, 아무튼 종이로 만든 것 중에서 가장 용도가 다양한 물건이다. 하지만 역시 참삶의 길을 묻는 자에게 지혜를 가르쳐주는 책의 본래 목적으로 사용할 때 제일 좋은 것.
11.코미디언..타인을 웃기는 사람이면서도 자신은 우스운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눈물로 밥을 말아먹는 아주 특별한 종족.
12.통장..어떤 사람에게는 내일이 오늘처럼 힘들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는 건강 진단서.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 모양 그 꼴로 살다가는 개고생을 면치 못할 거라고 꾸짖는 경고장.
13.플레이보이..여자가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기보다, 먼저 내가 여자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남자. 여자의, 여자를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고민하면서 그 결과물들을 일상에 적극 반영하는 실천주의자. 이따금 임자를 잘못 만나면 뺑이를 칠 때도 있으나 그럼에도 '치마 입은 인간'과는 평생 끈끈한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소신을 버리지 않는다.
14학교..겉으로 내세우는 것에 비해서는 결과가 가장 시원찮은,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종요집단. 진리탐구, 전인교육, 인격도야, 100%취업 등 온갖 미사여구를 남발하며 어리석은 중생을 유혹하지만 결국 하는 일은 졸업장 발급이 고작인데, 그것마저도 사회라는 고속도로에서 제대로 사용하기 힘들 때가 많다.
(책 전문중에서 각 자음에 해당하는 단어 하나씩 선정..)
박광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캐릭터 뽀리는 이뻐라 했다..
보기에도 둔한 것 같은 외양에서, 왠지 공들이지 않은 것 같은 만화안에서의 그가..
이런 기발하고도 공감 할 수 있는 사물의 재해석이라니.
존경스럽다..
기존의, 백과사전을 두드리면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보편적 설명들에 비해 이 얼마나 상큼하고, 정확한지..
'꼴'에 이은 나의 두번째 만화책도 역시 성공적이었다..
한가지 흠이라면 가격에 비해 책을 너무 빨리 읽게 되서 약간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
암튼..나도 살아가면서 나만이 정의 내릴 수 있는 사전을 하나 만들어 보는 것도 매우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해보면서 이만 맺는다..
악마의백과사전..박광수..홍익출판사.